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털루 전투 (문단 편집) ===== 나폴레옹, 본인의 회상 ===== <세인트헬레나의 회상>에서 나폴레옹은 워털루에 대해 이런 구술을 남겼다. >'''"패자의 명예도 타격받지 않았고, 승자의 명예도 드높아지지 않은 이상한 승리였다. 패자는 그 파괴를 뛰어넘어 기억될 것이고, 승자는 어쩌면 잊힐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은 '''부분적으로 사실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여전히 세계사의 중요한 인물로 꼽히고 있고, 블뤼허는 그에 비하면 상당히 이름이 덜 알려졌으나[* 그래도 블뤼허 역시 수혜자이긴 하다. 당대에는 영국에서 블뤼허의 인기는 상당히 높았고 본국인 프로이센과 독일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현재에도 인물 나폴레옹에는 관심이 있어도 나폴레옹 전쟁 자체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 그나마 블뤼허는 워털루 전투 덕분에 이름이라도 들을 수 있지 카를대공이나 쿠투조프는 아예 모르기 십상이다. 물론 조연급이지만...] 아서 웰즐리는 전혀 잊혀지지 않았다. 웰즐리가 여전히 당대 최고의 명장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고그의 주 활동 무대였던 이베리아 전역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 몰락에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 중앙부의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러시아 전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고 규모면에서도 차이가 났다. 그러나 '''웰링턴은 나폴레옹과 워털루 전투에서 딱 한 번 싸워봤음에도 나폴레옹 최대의 라이벌로 불리고 있다.''' 워털루를 언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인물이 바로 나폴레옹과 웰링턴. 수많은 소설, 만화, 영화에서 역시 '''웰링턴은 나폴레옹을 물리친 역사의 라이벌'''로 나온다. 물론 명장으로서, 그리고 역사적으로 평가하면 나폴레옹이 훨씬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말이다. 만약 워털루 전투가 없었으면 웰링턴은 프로이센의 블뤼허, 오스트리아의 카를, 러시아의 쿠투조프에 비해서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즉, '''워털루 전투의 최대 수혜자는 웰링턴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영미가 세계를 주름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영미 위주의 역사관[* 영란전쟁이나 잉글랜드-스페인 전쟁이 대표적인데, 대중들에게는 영국의 해상패권을 확립시킨 위대한 승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무승부거나 오히려 영국이 굴욕적으로 대패한 전쟁이었는데도 영미 위주의 역사관 때문에 거꾸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이 널리 퍼진 덕을 단단히 본 측면도 분명히 있긴 하다. 워털루의 또 다른 주역인 블뤼허의 낮은 인지도가 이를 방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